내 눈물을 내가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울어야지.
산내에서 만난, 비슷한 문제를 겪은 또래 친구들이"그렇게 고통스럽고 자꾸만 떠오르고 불편한 시간들이 괜찮아지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일거야." 라고 위로해주었다. 그게 정말 위로가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상대측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대할 수 없는데, 그 문제로 오랫동안 괴로워하고 있는 내가 억울했기 때문이다.
아마, 아주 서서히일지도 모르지만 그 공동체의 문제는 점점 더 또렷히 드러날 것이고, 감추고 덮는 것이 한계에 닿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나같은 사람, 친구들 같은 사람들은 차곡 차곡 쌓여가겠지. 스쳐가는 사람은 그저 스쳐간 그 뿐이지만, 나같은 사람은 무언가를 품고 있는 사람이니까. 때가 되면 말할 기회가 오겠지. 아니면 누군가 무언가 그 말을 대신할 날이 오겠지.
그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 공동체와 같을 수는 없으니까. 적어도 더 나은 삶을 만들며 살 수 있겠지. 적어도 같은 종류의 부끄러움을 스스로 만들며 부끄럽게 살지 않겠지. 부끄러움은 그 공동체의 몫인 것을.
공동체는 너무나 두껍고 단단하지만, 사실 그걸 구성하는 건 너무 가벼운 모래들이었다. (모래들아 미안.) 건드리면 부서질 관계들 뿐이었던 것 같은데. 친구들의 질문이 오래 남았다. "누가 그렇게 힘들게 한 지 모른다. 그 공동체는 나를 힘들게 했는데, 그 공동체의 누가 나를 힘들게 한 건지 모르겠다."
산내 친구들도 나와 너무도 닮은, 그런 고통을 겪었는데, 미안하고 아이러니하지만 너무나 부러웠다. 함께 겪는 이가, 마음을 모을 이가 여럿이라니! 멀리서 마음으로 함께하는 이웃-이 되고 싶었다.
내가 흘린 눈물만큼 그 공동체가 부끄러움으로 몸부림치면 좋겠다. 모든 아픔을 외면하고 적당히 넘기며 자신있게 사랑과 평화를 말하고 있는 그들이, 천천히 오래 많이 아팠으면(서서히 부끄러워 결국엔 견디기 힘들면) 좋겠다. 내 눈물을 내가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