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풍성한 일상

같은 시간 다른 밀도

슬픈 세상의 기쁜 인간 2018. 10. 10. 20:31

이렇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달력을 볼 때 차오르는 생각.
1월부터 7월까지- 놀고 일하고 살고 어울리고 그러느라 참 빼곡했구나.
8월은 그 곳에 계속 남아야 할 지, 떠나야 할 지 고민하고 애쓰느라 시간을 모두 보냈고
결국 떠나기로 결정하고 지금 여기에서 9월을 보내고 어느새 10월에서도 열흘이나 지났다.

여기서 서성거리는 한 달은, 어딘가에 속해서 무언가를 바삐 하고 있는 한 달과 그 느낌이 참 많이 다르다.
너무 당연한 얘기일까? 그렇지만 요즘 유난히 선명하게 비교되어 다가온다.
여기 있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았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다이나믹한 하루가 쌓였을까,
얼마나 많은 말들이 오가고, 얼마나 많은 머뭇거림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이 웃고, 얼마나 많은 문서/글을 썼을까...)
그 곳/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바삐 하고 있었다면 지금 이런 생활에서 누리는 기쁨은 맛보지 못했겠지 하는 생각도 한다.

아이들과 시끌벅적 북적북적 부대끼며 지내는 것과 
20년 넘게 함께한 가족(나이 들어가는 부모님과 서른의 언니)들과 내집에서 질리도록 편안하고 익숙하게 지내는 것은 
마치 대가족으로 증조부모님과도 함께 살던 시대와 1인 가구 시대만큼이나 비교된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엄청났음을 새삼 느낀다.
아파트 놀이터를 지날 때 초등학생들을 보면 말을 걸고 싶어지고, 그들이 궁금하고..
'저런 아이들이 나와 지내던 벗이었지...'하기도 하고..
학교에서보다 한 층 가라앉은 나의 에너지를 내 몸에서 느끼기도 한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내 삶에서 싹둑 잘려나가고, 지난 사랑스러웠던 시절과 단절된 생활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주변에 엄마가 돌보았던 초등학생 아이들이 살기도 하고,
가끔 마음이 맞아 초등학생 아이들과 부모님들과 다정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니까.
그래서 여기서 지내면서 마음에 찾아올 법한 공백들이 어느만큼은 채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언젠가, 어쩌면 곧 또 아이들과 다정하게 에너지 넘치게 마주하고 부대낄 수 있겠지.
"쌤은 진짜, 애들이랑 있는 거 잘 어울렸어요. 너무 보기 좋았어요."
어린이들과 또 그 가족들과 안전하고 평화로운 배움 공동체를 이루며 다시 살아가게 되는 것.
그런 꿈을 품고 지내는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