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흔들리고 녹아내리는 초 같다.

나는 그대로 나이긴 하지만, 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것 같다.

남들이 보는 내가 어떤 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힘든 건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내 스스로 모르겠다는 것.

 

성격이 바뀌고 있다.

성향도 바뀌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낯설다.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어오던 내가

사람들을 만나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것 같다.

어떤 이야기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었던 내가

어떤 이야기에서도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내가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다.

 

시원시원한 칼질에 턱턱 썰려나가는 무처럼

무심코 하는 한 마디에 내가 토막토막 나서 잘려 나가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내 영혼이 지구에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우울인지 불안인지 신경과민인지...

나는 원래 이렇게 될 사람이었던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으면 이건 왜 이런건지...

나는 이걸 견딜 수 있는지...

내가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려고 해도 되는건지...

언젠가 확 불안이 나를 덮쳐서

내가 모든 걸 망쳐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꾸자꾸 든다.

다음이 불안하고, 내일의 내가 어떨지 몰라서

내가 제일 싫고 내가 제일 두렵다.

 

갑자기 분노가 끓어오를 땐,

불안의 끝에 화르르르 도착할땐,

나를 괴롭혀야 진정이 된다.

이전엔 그런 증상은 없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죽지 않아도 목을 조르거나

나를 마구 때리고

나에게 내가 '죽여버리겠다 너같은 쓰레기'

'그냥 뒤져버려 너같은 쓰레기'처럼 말해야

그나마 살 것 같다.

그것도 못할 땐,

제발 누가 와서 날 찔러 죽여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심장이 쪼그라들어서 견딜 수가 없게 된다.

 

이런 병은 왜 있는거지?..

왜 내가 겪고 있지?..

다음에 글을 쓰러 올 땐 이 기분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면 좋겠다.

 

아무리 말해도.. 아마도..

아무리 나를 사랑해도.. 아무도..

못 알아들을 것 같다.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으니까.

그냥 언젠가 좋은 때에,

죽으면 참 좋겠다.

살아있는 게 너무 힘드니까.

미칠 수도 있을 것 같다.

 

난 그냥 무책임하고, 불쌍한 사람, 가엾은 아이로 기억되겠지?

내가 사랑하던 나, 원래의 나, 진짜의 나를 기억해줄 사람도 있을까?...

아니, 그런 나를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이건 진짜 내가 아니었다는 걸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어디에 써도 누가 볼 것 같다. 무섭다.

그리고 달려와 내게 말할 것 같다.

칼을 심은 것 같은 눈빛으로

"이 미친년아 너같은 정신병자가 아이들한테 무슨 짓을 할 줄알고,

넌 어린이라는 말 입 밖에도 내지마. 인간 쓰레기야"

 

Posted by 슬픈 세상의 기쁜 인간
2021. 3. 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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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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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휴지에서 벗어나

물과 면 손수건으로

 

공장에서 만든 (코팅, 장식, 포장이 있는) 공책과 수첩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친환경/재활용 재료로 필요한 만큼 스스로 만든 공책과 수첩으로

 

빵집에서 벗어나

내가 만든 빵으로

 

가까운 거리 자동차에서 벗어나

두 발과 자전거로

 

먼 거리에도 자동차에서 벗어나

내가 질 수 있는 만큼의 짐을 진 모습으로

 

계속해서 새로 사는 공장출신 옷에서 벗어나

손으로 지어 입는 옷으로

 

 

추가해야지 ...

 

Posted by 슬픈 세상의 기쁜 인간

어떤 부당한 일을 겪어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부드럽고 긍정적인 말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왜 화가 나고, 지적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만 발산할까?

 

오래 고민했는데...

오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이유는 '어쩌면' 내가 여전히 약자이기 때문이거나

내게 더욱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나는 게 당연한데,

화가 조금 나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거나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 문제에서 만큼은 내가 가장 당사자이고, 가장 약자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그런 일을 겪을 확률이 높고,

그게 내 문제이거나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면, 조금 더 차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화를 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냐고 더 화내고, 조급해하고, 그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화나서 마땅한 일이 있다면, 기꺼이 화를 내리라.

스스로 화를 억누르지 않고, 부정하지 않고, 화를 내리라.

하지만 사랑이 없는 분노와 혐오를 품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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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슬픈 세상의 기쁜 인간
2020. 9. 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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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니 본인을 굳게 어른이라고 믿는 어른들은) 날 이상하다고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엄청난 상상력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몰라도 어린이의 시선과 마음이 내겐 조금 장착되어있는 것 같다.

그게 때때로 기획력이 되기도 해서 난 나의 풍성한 상상력을 엄청 좋아한다.

 

그림책을 고를 때도 주로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현실의 모든 일들에 상상을 더해 밋밋한 모든 현실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니까...

그리고 뭐든 내가 원하는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느낌이 멋지니까..

 

난 이름 붙이기도 좋아하고, 상상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가까운 어제를 예로 들자면,

딸기 모종을 모종포트에서 꺼내서 갯수를 세어 봉투에 담는 일을 했는데

(이렇게 봉투에 담아서 팔려나간다. 봉투 크기에 따라 모종을 50개나 100개, 150개씩 담는다. 어젠 무려 17,000개를 담았다.)

100개의 모종을 봉투에 그냥 담으려면 어려우니 개발된(?) 방법이 있다.

(진짜 농민들은 멋지고, 농민들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힙하다.)

1. 비료포대를 가로로 펼치고 그 위에 모종 100개를 올려놓는다. 

2. 비료포대로 모종을 감싼다.

3. 비료포대를 안고 비닐봉투에 넣는다.

4. 비료포대만 꺼낸다.

와우! 별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엔 정말 똑똑한 생각이다.

바쁜 와중에 그런 머리를 쓰다니..

 

어젠 동지와 둘이서 호흡맞춰 작업을 하는데

봉투에 비료포대(모종다발)을 넣을 때마다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같았다.

비료포대가 무거우니 비닐봉지에 턱 들어 얹은 다음에,

쏙- 입히며 일으켜 세우니까. ㅋㅋ

그래서 '모종 기저귀 갈아주기' 작업으로 이름을 지었다.

Posted by 슬픈 세상의 기쁜 인간

초록지붕의 앤, Anne of Green gables

그러니까 빨간머리 앤.

이 이름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단 한 번도 궁금해 한 적이 없었다.

난 어린 시절엔 늘 남자아이에 가까운 취향과 취미를 가졌었고

그래서인지 너무나 소녀스럽다고 생각한 '빨간머리 앤'이라는 이름에 궁금증을 가진 적이 없다.

스무살이 넘어가면서부터 핑크색을 처음으로 좋아해봤고, 레이스와 인형도 좋아해보기 시작했다.

난 그런 내가 좋았다. (애초에 그런건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지만) 여성적이지도 남성적이지도 않고 그냥 나인 것이.

가끔 어떤 사람들은 날 보고 중성적인 매력이 있다며 칭찬했는데, 아마 그냥 나답다는 칭찬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오, 이럴수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빨간머리 앤을 이제야 알아봤다니.

내가 아는 가장 포근하고 다정한 언니가 내게 선물해줬던 책 <빨간머리 앤>.

사실 너무나 내 취향이 아니라서 어떻게 읽을지 난감했는데-

그래도 언니가 선물해줬다는 사실만으로 꼭 읽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보관해두던 책.

그 언니가 자꾸만 생각나는 즈음(결혼 직후)에 읽기 시작했다. 느린 속도지만 꾸준히 조금씩 읽었다.

서너장 읽다보니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넷플릭스 빨간머리앤이 궁금해졌다.

영상은 내 상상력을 모조리 집어삼키고 모든 소설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게 뻔하기 때문에 책을 먼저 읽으려고 보고싶은 마음을 꾹꾹 참았다.

그러다... 결국 못참고 넷플릭스 빨간머리앤을 시작해버리고 말았다.

하하하 거의 내달리다시피 보았다.

처음에 너무 조잘거리는 앤이 짜증나기까지 해서 정말 완벽한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 강력추천으로 엄마에 아빠까지 빨간머리앤에 푹 빠져있다.

나는 시즌3 끝까지 정주행을 마치고

다시 책을 읽고 있는데- 황홀한 대사들을 곱씹고 천천히 음미하는건 정말 좋지만

영상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서 도무지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매슈가 마릴라의 동생이 아니라 오빠라는 것도 낯설기만 하다.

그게 가장 아쉬운 점이지만, 아무튼 빨간머리앤을 알게 된 것이 2020년 멋진 수확 TOP10에 포함될거다.

 

마릴라 아주머니는 가끔 꼭 우리엄마같다.

고지식하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단호하고 엄하지만,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알게되었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며 배우는 모습이.. 그랬다. 잘 가르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상상력 폭발하는 앤은 나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어줬다.

내 주체할 수 없는 상상력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증이라도 받은 기분이다.

내 상상력에 대해서만 글을 쓰래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밑줄을 그어가며, 희망을 품으며

책을 읽어나가야지.

그 다음 앤들도 벌써 너무 읽고 싶다.

(애이번리의 앤, 레드먼드의 앤, 윈디 윌로우즈의 앤, 꿈의 집의 앤, 잉글사이드의 앤, 무지개 골짜기, 잉글사이드의 릴라, 앤의 추억의 나날까지 몽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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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이모가 방문요양보호사로 일하시다가 얼마 전 방문요양센터를 열었다.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이모가 전화로 홍보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도움을 청하셔서 전단지 홍보에 아는 만큼 조언도 해드리고, 네이버 지도에 업체 등록도 도와드렸다. 그 후에도 두어번 통화하게 되었는데, 너무 미안한 목소리로 뜸 들이시며 "블로그도 만들고 싶은데.. 너도 많이 바쁘지..?" 그 후로 이렇다 할 답변을 못하고 시간이 지났는데, 이모는 스스로 블로그를 만드는 데 성공하셨고, 글도 몇 편 올리셨다고 엄마로부터 전해들었다. 들어갔다가 울컥. 내가 만들면 이렇게 못했을거야. 요양보호센터 홍보글이 아니라, 이모의 솔직담백한 글이 세 편 올라와있는 블로그. 오랜만에 이웃추가를 했다. 이모가 쓰신 글은 처음 읽어본다. 이모의 마음을 이렇게 들여다 본 것도 처음인 것 같고. 이모가 이런 마음으로 요양보호사 일을 하셨구나. 감사해졌다.

 

 

 

첫 방문요양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데 일 할 데가 있어 한달음에 달려갔다.분위기를 보니 자녀들은 원하는데 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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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1 (2019년 1월)

 

푸른 "엄마~ 엄마는 뭘로 만들어서 이렇게 좋아?"

미건 "흙으로 만들었어~ 우리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거든."

 

 

어느날 2 (2019년 여름)

 

미건 "하루 더 있다 가지. 엄마랑 놀고."

푸른 "아유- 내가 여기 있음 소는 누가 키아"

미건 "소는 지절로 크지."

 

 

어느날 3 (2019년 9월)

 

경식 "좀 더 있다 가지. 엄마랑 놀다가. 어리광 부리고."

푸른 "아유- 저도 이제 성인이에요. 제가 언제까지 엄마아빠 그늘 밑에서 어리광 부릴 줄 알았어요."

경식 "엄마 아빠는 작은 사람이라 그늘도 없다."

 

 

우리 엄마 아빠가 흙으로 만든, 작은 사람이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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